다시는 내게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더이상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다. 이제는 벗어나 상관없는 일일 줄 알았다......
그러나 난 또 다시 동마에 다녀왔다....
2018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 하지만 내겐 동마(동아마라톤대회의 약칭)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예전, 그러니까 서울국제마라톤이 동마의 여러 대회 중 한 대회로 바뀌기 전에는(지금은 서울국제마라톤, 공주웅진마라톤, 경주벚꽃길마라톤이 모두 동마이다) 동마라면 서울대회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는 그때 그러니까 서울대회를 동마라 칭하던 때부터 이 대회에 참가했었다. 내 인생의 40대에 할 일 가운데 하나로 마라톤 풀코스 완주가 있었다. 30대 중반 처음엔 공부하는 데 건강한 체력과 건강한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그리고 강사시절 특별히 시간의 구애 없이 언제든 내가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생각하여 그렇게 시작된 달리기였다. 맨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날, 300미터를 채 이어달리기가 버거운 자신을 발견하고 지난 세월 내몸에 관심을 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었다. 그렇게 달리는 거리를 늘려가고 10km, 하프 대회에 참가하면서 40대에는 꼭 풀코스를 뛰자고 다짐했었다.
그러던 것이 만 40세때 덜컥!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고 성공했었다. 첫대회는 전군 마라톤 대회! 군산 월명 체육관 앞에서 출발하여 전군 벚꽃길을 달려 전주 공설운동장에 도착하는 코스였다. 힘들고 힘들고 힘들었지만 그렇게 나의 첫 풀코스 완주는 40대 첫해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매년 습관처럼 그 대회에 참가했었다. 몇 번의 중간포기와 재도전이 있었긴 했지만 전군 마라톤 대회가 없어지기까지 대회 참가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2008년부터 동마에 참가했다. 서울 도심을 가로질러 달릴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이 대회가 유일하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건 여기 게시판에 이미 적은 바와 같다. 아무튼 그렇게 40대 마라톤 완주의 목표는 총 10회의 참가(7번 완주)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아니 막을 내린 줄 알았다.
그런데...올해 2018년 나는 다시 동마를 뛰었다.동마를 뛰게 된 계기는 사실 내게도 조금은 의외였다. 물론 주 1,2회 꾸준히 달리기를 해왔고 2014년 안식년 때는 중국에서 정말 달리기를 많이 했었다. 내가 있던 학교 캠퍼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주변의 많은 곳을 달렸었다. 나는 새로운 곳을 가면 그 지역을 달리면서 지리도 익히고 주변 경치도 구경한다. 중국의 도시와 운동장, 주변 호수와 산지 등을 자세히 보고 즐길 수 있는 기쁨도 달리기가 주는 즐거움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저 달리며 즐겼을 뿐 대회에 참가하지는 않았다.그런데, 올 1월 친구가 동마에 참가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대회에 참가하기엔 준비가 덜 돼 있었고 채 2달도 남지 않았는데 가능할까? 그런 의심스런 생각에 무리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이때가 아니면 아마 다시는, 이제 정말로. 내 인생에 마라톤 완주는 더이상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마라톤을 신청했다. 1월 19일이었다.
그때부터 매일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 몸상태를 살피면서 조금씩 훈련량을 늘려 갔다. 발다닥에 물집이 생겼다가 터지기를 반복하더니 점차 굳은살로 바뀌어갔다. 발톱도 처음에 새까맣게 멍이 들어 달릴 때마다 아프더니 어느새 자리를 잡아가면서 오래 달려도 괜찮을 정도로 단련이 되어 갔다. 몸이 만들어지면서 마음도 편해졌다. 다만, 시간상 장거리 훈련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주말마다 20km, 30km를 번갈아 뛰면서도 그 이상은 항상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모두가 함께 뛰는 대회 분위기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대회 날이 왔다!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했다. 어제 저녁 미리 서울에 올라와 서대문에 위치한 전북대 게스트하우스용 호텔에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다. 그래서인지 6시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여느때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 후 몸을 씼고 6시 40분 쯤 집결지인 광화문 광장으로 출발했다. 걸어서 지하철 한 역 정도 떨어진 거리였지만 쌀쌀한 날씨에 바람마져 불어서 조금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저만치 마주오던 오토바이 하나가 앞에 서더니 나더러 데려다 주겠다며 타란다. 형님을 대회장에 바래다주고 오는 길이라며 내 복장을 보고 친절을 베푼 것이었다. 덕분에 쉽고 편하게 대회장까지 갈 수 있었다. 이른 시각이라 그리고 공휴일이라 호텔 조식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기에 편의점에 들어 삼각김밥 하나로 아침을 대신했다.
대회장인 광화문 광장에는 벌써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출발지점인 세종대왕상 주변은 물론 광화문에서 이순신 동상이 있는 사거리까지 그리고 그 주변에는 대회 참가자와 응원자, 대회 진행자 및 자원봉사자 등으로 넘쳐 났다. 출발을 앞두고 기대와 걱정, 설렘과 흥분의 분위기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날씨는 좋지 않았다. 쌀쌀했고 바람도 불었다. 대회 후 전주로 내려올 땐 많은 비가 왔었는데 그러려고 그랬는지 아침부터 날은 흐리고 추웠다. 그래서 몸의 보온을 위해 겉옷과 바지를 입고 나머지만 짐을 싸 이동용 짐차에 실어 보냈다. 그리고 간간이 물도 마시고 준비운동도 하며 출발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8시가 되었다. 이제 드디어 출발!
먼저 엘리트 선수들이 총성에 맞춰 출발하고 이어서 A그룹부터 E그룹까지 순서대로 출발했다. 대회 참가가 오랜만인 나는 기록이 없어 맨 나중 E그룹에 소속돼 있었다. 출발을 앞두고 겉옷과 바지를 벗어 <아름다운 기부함>에 넣고 힘차게 출발지점을 뛰어 나갔다. '20km까지 2시간 안에 가자'고 마음 먹은 터라 앞길을 막는 사람들을 피해 속도를 내보았다. 그러나 자유롭게 뛰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속도를 지키고 있는 거였지만 내게는 더디게 느껴졌다. 5km를 달렸을 때 기록은 30분 6초. 내심 27,8분 정도를 기대했는데 조금 늦어졌다. 다만 몸도 마음도 가벼운 것이 위안이었다. 다음에 좀 더 속도를 내보자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주로가 길을 막았다. 청계천변의 좁은 도로에는 사람들로 가득차 여간해서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다. 그저 앞사람에 맞춰 달릴 뿐이었다. 10km, 1시간 09초. 생각보다 많이 느리지는 않았지만 조바심이 났다. 내심 20km, 2시간이라고 했지만 달리기 후반부를 생각하면 시간을 조금 당겨놔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계천 끝머리를 돌아 시청쪽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좁았고 게다가 앞서 출발한 그룹의 후위 그룹까지 섞여 더 혼잡했다. 그렇게 사람들 속에 섞여 15km를 지났다. 1시간 31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길이 종로대로 큰길로 이어진 것이었다.
갑자기 활짝 넓어진 큰 길을 신나게 달려 나갔다. 반대편 차로의 많은 차들이 이쪽의 우리들을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언제 이렇게 도심 한복판 대로를 달려볼 수 있으랴. 그 기분을 만끾하며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기분도 상쾌하고 몸도 가벼웠다. 20km 통과기록은 2시간 06초.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 1시간 50분대에 달리던 것을 생각하면 뒤늦게 출발하여 사람에 섞여 달린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목표는 완주!(스스로 이번 대회의 목표를 1. 다치지 않기 2. 완주하기 3. 4시간 30분이라고 세웠었다.) 이제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후반부 달리기를 시작하자고 다짐했다. 멀리 중간 급수대 및 간식대가 보였다. 그동안 몇 군데를 그냥 지나쳤기에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다. 허겁지겁 바나나 한 개와 물을 집어 들었다. 조금은 천천히 먹고 마시며 힘을 비축했다. 그리고 동대문을 거쳐 신설동쪽으로 달려나갔다. 25km 지점을 통과할 때 기록은 2시간 34분. 아마 간식을 먹는 동안 속도를 조금 늦추었기 때문일 거라고 위안을 하며 조금 더 속도를 높이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스스로의 다그침은 머릿속의 생각일 뿐 군자교를 거쳐 능동 어린이 대공원 그리고 세종대학교 정문을 지나면서 몸은 지쳐가고 있었다. 속도는 오히려 느려지고 보폭은 좁아지며 허기와 갈증으로 손끝은 저려오고 어지러움도 느껴졌다. 주변의 경치도 보이지 않았고 도로변 수많은 사람의 응원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죽을 힘을 다해 앞으로 발을 밀고 있었다. 30km 통과기록은 3시간 6분. 이제부터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30km 이상 장거리 훈련을 해보지 않았기에 여기서부터는 정말 도전이었다. 그러나 마음도 몸도 이제 거의 지쳐 갔다. 32km를 지나고 처음 걷기 시작했다. 500미터 뛰고 500미터 걷고 다시 300미터 뛰고 500미터 걷고 다시 100미터 뛰고 500미터 걷고 도저히 손도 발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어찌하나? 앞으로 가야할 길이 끝이 없어 보였다. 30km 이상 장거리 훈련이 없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 왔다.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다. 그 이전에도 틈틈이 달리기를 계속해 왔기에 두 달간의 집중적인 훈련이면 30km 이후에도 힘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자만이 일을 망친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리고 예전에 이 대회에 참가했을 때에도 바로 이 지점이 내게 큰 어려움이었던 기억도 다시 떠올랐다. 그때도 정말 힘들었었는데, 그래서 30km 이후 훈련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었는데...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은 이제 더이상 버틸 힘이 없어져 가고 있었다. '준비된 자만이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래, 인정하자. 준비가 부족했다. 이번엔 여기까지 다음에 더 잘 준비해 보자. 완주를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더 계속하다가는 몸에 상처를 줄 것 같았다.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막상 완주 포기를 생각하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새벽마다 완주를 생각하며 달렸던 게 억울했다. 물집의 쓰라림과 발톱이 빠지는 고통을 참은 게 억울했다. 주말마다 20km, 30km를 달리며 느꼈던 그 외로움이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골인의 환호와 감동을 포기해야 하는 게 화가 났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몰려 왔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가족에게 미안했고 마라톤 참가를 자랑이나 되는 양 큰소리친 게 부끄럽고 창피했다.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런 부끄러움도 내가 감당하기에는 이미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중단하는 용기가 더 중요한 거예요.”
예전에 참가했던 어느 대회에서 한 할아버지가 내게 해준 말이었다. 30km 정도에서 경기를 포기하고 회송 버스에 올라 자책하고 있던 내게, 38km 정도에서 포기하신 할아버지가 그랬다. 경기를 포기한 게 아니라며 더 잘 준비해서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는 중단!(달리기는 앞으로도 더 계속할 것이니 포기가 아니라 중단이라고 했다)할 줄 아는 용기가 더 큰 용기라고 했다. 몸을 다쳐가며 완주하는 것은 좋은 게 아니라고. 100번도 넘게 완주한 할아버지의 말씀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야 더 잘 할 수 있는 거라고. 맞다. 나도 솔직하게 준비가 덜 돼 있었다고, 준비는 부족한데 자만심과 기쁨을 얻고 싶은 욕망만 강했다고 고백한다. 겸손해지자. 내 몸을 다치게 한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포기가 아니라 중단하자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회송 버스를 기다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35km를 그렇게 통과했다. 3시간 52분.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내 귀에 어느 아이의 사랑스러운 외침이 들려왔다.
“멋진 아저씨들, 이것 먹고 힘내서 달리세요.”
눈을 들어보니 초등학교 3, 4학년 쯤 되었을까? 어린 여자 아이 하나가 도로변에 먹을 것을 놓고 외치고 있었다. 물과 사탕과 초코파이 같은 것을 수북하게 쌓아놓고 달리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그 뒤에 보이는 교회에서 간식을 준비한 듯했다. 달리던 사람들이 물을 마시고 사탕과 초코파이를 먹고 있었다. 달리지 못하고 걷고 있었지만 나도 무척 배가 고팠다. 그래서 다가가 초코파이 하나를 들고 먹었다. 물도 마시라며 아이는 친절하게 권했다.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먹고 나자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조금 미안했다. 힘내서 “달리라”는 말이 떠올라 그냥 걸어가기가 민망했다. 그래 조금만 뛰자. 아이가 볼 수 없을 때까지만 뛰자. 저 아이의 외침이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만이라도 뛰어 가자. 그렇게 해보자. 그래서 다시 뛰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신기하게도 힘이 들지 않았다. 500미터를 뛰고 1km를 뛴 것 같은데 아까처럼 걷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길은 이제 잠실대교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약간 오르막길이어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어하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뛰고 있었다. 느리긴했지만 계속해서 뛰고 있었다. 저기까지, 잠실대교 입구까지만 뛰어 올라가 보자. 할 수 있을 거야. 신기하게도 나는 뛰어서 오르막길을 올랐다. 그렇게 잠실대교에 올라서자 인도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내게 하는 소리는 아니었겠지만 나도 마주 보며 파이팅을 외쳤다. 드무드문 전문사진사들이 보일 때는 “아저씨, 저도 찍어주세요!”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기분도 좋아졌다. 강바람은 정말 시원했고 넘실대는 강물은 한강의 위풍당당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강에 떠있는 배들의 평화로움과 강변의 멋진 풍경들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보며 즐겁게 잠실대교를 건너갔다. 그 끝에 38km 이정표가 보였다.
38km라고? 완주를 포기, 아니 중단하자는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니 이거 완주할 수 있는 거 아냐? 라는 희망이 솟아났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수 있어! 해 보자! 새로운 다짐이 용솟음쳤다. 그래 해 보자. 쉬지 말고 가 보자. 길은 어느새 잠실벌을 가로지르는 잠실대로로 이어지고 있었다. 40km 지점을 그렇게 지나갔다. 4시간 32분. 조금 더 가자 마지막인 듯 간식대가 보였다. 그냥 갈까?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려면 계속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조급함이 또 다시 유혹했다. 그러지 말자. 즐겁게 달리고 달리는 기쁨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간식대에서 마지막으로 물을 충분히 마시며 몸을 다스렸다. 그리고 마지막을 향해 달려나갔다. 발걸음도 그리 무겁지 않았다. 마지막이 다가올 수록 사람들의 환호는 커져갔다. 잠실아파트 단지를 지나며 저 멀리 잠실 주경기장이 보였다. 주경기장 입구에 길게 쳐진 주로 양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힘내라며 격려를 보내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잠실주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경기장 안에는 이미 골인한 사람들과 그들을 축하하는 사람 그리고 곧 올 가족, 지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로 가득했다. 축하와 격려와 환호와 응원으로 가득찬 경기장 트랙을 달렸다. 400m, 300m, 200m. 사람들이 몰려뛰는 안쪽 라인을 벗어나 바깥쪽으로 돌았다. 그래도 오히려 사람들보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50m, 30m, 10m ... 골인! 그런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골인지점을 통과할 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이상했다. 지난 몇 번의 대회에서 골인지점을 통과할 때는 항상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곤 했다. 뭔가 해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이번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다. 그저 손목에 찬 시계의 정지버튼만 눌렀다. 4시간 49분 11초. 기록을 보며 기념품 배포처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올해도 결국 완주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아까 그 꼬마 아이가 생각났다. “멋진 아저씨들, 이거 먹고 힘내 달리세요.” 멋진 아저씨들..., 멋진 아저씨... 왠지 울컥! 했다. 그랬구나. 그 아이가 도왔구나. 내가 완주한 것은 그 아이의 도움이 있었구나. 그 아이가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고마워요, 꼬마 아가씨.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아 완주했다. 더 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 대회였다. 성실하게 준비했어도 항상 어려움이 있음을 알게 해준 대회였다. 그리고 어려움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 대회였다. 인생도 그렇다. 잘 분비해야 하고, 준비하더라도 어려움은 항상 있으며, 어떤 때는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무언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잘 준비해야 하고, 어려움에 대비해야 하며, 끝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은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깨닫게 한 대회였다.
그렇게 동마는 또 내게, 내 인생에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