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09.03.16
수정일
2009.03.16
작성자
윤석민
조회수
1027

동마를 통해 배운 것은....

제80회 동아마라톤 겸 2009 서울국제마라톤에 다녀왔다. 작년에 워낙 고생을 한 터라 - 당일 새벽에 올라가느라 잠도 못자고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음- 올해는 하루 전에 서울에 올라가 숙소를 정했다. 하지만 잠이 그리 쉽게 올 것이라고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고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으나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을 맞았다. 간단하게 토스트와 국물로 아침을 먹고 광화문 이순신 장군 앞에 가니 역시 사람들은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웬일인지 작년보다 더 무질서해 보였고 진행도 매끄럽지 않았다. 8시부터 출발하기로 한 약속은 어떤 이유에선지 10여 분이 미루어지고 6시부터 모이게 만들어 사람들은 추위로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그런 것 기대하고 동마에 온 게 아니니까. 동마는 그저 나와 나의 싸움이니까... 게으르려는 나와 이겨내려는 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와 무언가 끊임없이 추구하려는 나,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 포기와 나 자신에 대한 믿음, 희망의 싸움이니까... 그리고 난 오늘 동마를 통해 정말 소중한 걸 배웠다. 사실 동마에 참가하면서 난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째는 완주하는 것이다. 둘째는 기록을 깨는 것이다.(전 기록 4시간 17분) 셋째는 다른 이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세우며 사실 나는 이것이 참으로 소박하고 현실적인 것이라고 스스로 그럴 듯해 했다. 그러나 오늘 동마를 통해 내가 배운 것은 그것이야 말로 나의 오만이요, 그럴 듯한 말로 포장했지만 욕심 부리기에 다름 아닌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난 이번 동마를 통해 세 가지를 배웠다. 첫째,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105리 길을 뛰면서 사실 수없이 나 자신을 반성했다. 오만으로 가장된 내 소망 정도는 무참히 깨뜨릴 수 있었다. 수없이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도 내겐 완주의 영광을 주신 것에 감사했다. 인간이 아무리 버릇없이 대들어도, 자신의 능력을 자만하고 자기의 능력으로 이룬 것인양 자랑하고 실패하면 그때서야 남의 탓이고 신의 탓으로 돌리는 못된 사람들이더라도 그저 보듬고 기다리며 사랑을 베푼다. 아마 난 또다시 잘못을 하게 될 거고 또 이런 후회를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안다. 잘못은 하더라도 그 사랑만큼은 의심하지 말자. 그리고 쬐금(?)이라도 노력은 해 봐야지... 둘째,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성공을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오늘 우연히 옆에서 뛰게 된 달리미(50대 후반 - 60대 초반)의 얘기를 듣고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인데, 그동안 나는 나름대로 규칙을 세우고 그것을 목표로 훈련해왔다. 매년 초 풀코스 도전! 겨우내 준비하며 그 결과를 만끽하려고 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나의 생각일 뿐. 풀코스 완주를 위해서는 적절한 훈련과 준비가 필요하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내가 한 장거리 훈련 최장 거리는 28km였다. 그리고 25km 훈련을 몇 번 했으니 나름대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 30km가 지나니 훈련 부족의 느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볍던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고 스스로에 대한 회의가 깊어졌다. 끝까지 뛸 수 있을까? 작년처럼 또 다리의 통증을 얻게되는 것은 아닐까? 작년에 동마 후유증으로 발바닥과 무릎 통증이 생겨 두 달 정도 고생을 했었다.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 '달리기는 정직하다, 훈련한 만큼 성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 잘못된 판단으로 무턱대고 들이미는 것은 뻔한 결과일 뿐이다. 이것이 내가 배운 두 번째 이득이다. 셋째, 겸손해야 한다. 인정해야 길이 보인다. 이번 동마가 무엇보다 내게 베푼 가장 큰 배움은 겸손 이것이다. 나를 바로 보고 그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길이 보이고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숭례문을 돌아 청계천변을 뛰면서 난 작년을 생각했었다. 작년에 경기 초반 난 여러 가지 실수를 했었다. 소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뛰다가 굉장히 고생했었고 그 때문에 기록도 많이 손해를 보았다. 사람들에 싸여 앞길에 방해를 받아 기록은 더욱더 나빠졌다. 그래서 초반에 예상 기록보다 나빠져서 경기 내내 고생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동마에서는 미리미리 준비를 많이 했고 그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 하지만 10km를 지났을 때 기록은 여전히 예상 기록보다 나빴다.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 때문이었다. 내 마음대로 뛸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짜증을 돋구고 그럴수록 마음은 급해지고 몸은 더욱 답답해졌다. 이러다가 작년 꼴 나겠다! 하지만 그때 옆에 있던 페이스메이커가 내게 툭 던진 말이 "즐겁게 펀런하세요"였다. 그랬다. 그순간 나는 동마에 참여한 그 원래의 목적이 퍼뜩 떠올랐다. 내가 기록을 생각한 게 아니잖아. 내가 마라톤을 하는 것도 기록 때문이 아니잖아. 기록에게 원래의 내 동기를 빼앗긴 것 같았다. 그래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래 즐기자. 목표를 원래의 것으로 되돌리자. 훈련도 부족한 내가 기록을 욕심내는 것은 잘못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새로운 길이 보였다. 작년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작년의 고통이 떠오르고 나자 이번엔 그 고통을 즐겁게 넘겨보자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기록은 이제 둘째였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30-35km 구간은 고통의 시간이다. 내게도 그랬다. 이번에는 그 구간의 고통을 넘어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20-25km구간에서 무리한 게 떠올랐다. 역시 20km가 넘어가자 몸도 적당히 더워져 발걸음이 앞으로 자꾸 나아가려 하였다. 난 그걸 참았고 마의 구간이라고 하는 그 구간도 비교적 수월하게 넘었다. 그리고 잠실 대교 위에서는 잠시 눈도 감으면서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신선함도 음미하였다. 정말 신났다. 40km가 지나고 마지막 2km 남짓을 최선을 다해 달리면서 정말 마라톤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가족 친구 제자들이 하나씩 스쳐가고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걸음도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지막 결승점. 두손을 힘껏 치켜 올리며 나는 그곳을 지났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그 무엇이 치밀어올라 왔다. 그렇다. 난 올해도 동마를 했다!!! 이 느낌이 올해 나를 지켜 줄 것이다. *추신: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오늘 내게 있었던 감동은 아직도 손끝에 아니 가슴에 그대로 남아 진동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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